수십 년간 각국 정부는 위기 시 자국 자본이 달러로 도피하는 것을 막는 강력한 수단을 보유해 왔다. 자본 통제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외화 거래가 반드시 국내 은행 창구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이제 국제결제은행(BIS)이 130개국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그 창구가 이미 우회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 연구는 BIS 소속 경제학자 세 명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 외화 예금과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채널을 비교 분석했다. 결론은 암호화폐 업계를 넘어 거시경제 정책 전반에 중대한 함의를 던진다. 자본 이동을 제한하는 규제가 외화 예금은 뚜렷하게 줄이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 흐름에는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BIS 연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연구팀은 두 가지 자본 도피 채널을 비교했다. 첫째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의 외화 예금 데이터, 둘째는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84개국을 분석한 스테이블코인 흐름 데이터다. 두 채널 모두 경제적 스트레스 시기에 유입량이 증가하는 것은 동일하게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가 자본 이동 제한 조치를 시행하면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외화 예금은 제한 조치에 따라 눈에 띄게 감소한 반면, 스테이블코인 흐름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연구 저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규제된 은행 시스템의 경계 밖에서 부분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자본 통제 수단이 설계된 은행 인프라 자체를 우회하는 것이다.
같은 규제, 정반대의 효과
자본 통제 도입에 대한 두 채널의 반응. 정성적 표현. 출처: BIS, 2026
130개국 이상 연구: 자본 통제는 한 채널에는 효과적이지만 다른 채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누가, 왜 스테이블코인을 쓰는가
이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들여다보면 데이터가 현실적인 모습을 띤다. 연구는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과 스테이블코인 사용 사이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신흥국 가운데 과거 은행 위기를 자주 겪은 국가일수록 GDP 대비 스테이블코인 유입 비율이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은행 문이 한 번이라도 닫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은행보다 토큰을 더 신뢰한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연구된 사례는 나이지리아다. 높은 인플레이션, 자국 통화 평가절하, 달러 접근성 제한이 맞물리면서 스테이블코인이 가계와 소기업의 실용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이 은행에 암호화폐 이용자 서비스를 금지했을 때 거래량은 사라지지 않았다. P2P 시장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Cointelegraph 보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라틴아메리카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
BIS가 우려하는 이유
BIS는 자신들의 우려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BIS는 2026년 연간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제대로 작동하는 화폐 시스템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네 가지 속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BIS가 스테이블코인이 통과하지 못한다고 보는 네 가지 기준
BIS가 화폐 시스템의 필수 요건으로 제시한 기준. 출처: BIS 연간 보고서, 2026
- 단일성: 1유로는 누가 발행하든 항상 1유로여야 한다. 발행 주체가 민간으로 다양화되면 이 보장이 약해진다.
- 탄력성: 비상시 유동성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 준비금 방식의 통화는 이를 할 수 없다.
- 상호운용성: 시스템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분절된 네트워크와 표준은 고립된 섬을 만든다.
- 무결성: 시스템은 남용과 불법 자금 흐름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영국과 BIS의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균열이 드러난다 또한 권력 균형의 문제다. 바젤에 본부를 둔 BIS가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안, 미국과 영국은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공동 의향서에 서명했다. 이는 모순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분기다.
미국 입장에서 디지털 달러화는 문제가 아니라 대사관도, 추가 비용도 필요 없이 자국의 통화 영향력을 확장하는 수단이다. 디지털 달러로 저축하는 가계 하나하나가 달러 수요를 늘리고, 간접적으로는 그 준비금을 뒷받침하는 미국 국채 수요도 높인다. 미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선택하지 않고 민간 발행자에게 시장을 맡긴 결정과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및 아시아 시장에 주는 함의
결과적으로, 이 논의는 신흥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금융감독원(FSS)과 금융위원회(FSC)는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통해 국내 거래소와 사업자를 규율하고 있다. DAXA 회원사인 업비트, 빗썸 등 주요 거래소는 이 틀 안에서 운영된다. 그러나 BIS 연구가 지적하듯. 규제는 진입 창구는 통제할 수 있어도 공개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지는 지갑 간 송금은 사실상 통제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해외 송금에 대한 논의가 규제 당국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MiCA 규제는 EU 내에서 운영하는 발행사와 플랫폼을 규율하지만 공개 네트워크상의 개인 지갑 간 이체는 제한할 수 없다. BIS 연구가 지적한 바로 그 비대칭성이다. 입구는 규제할 수 있어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훨씬 통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가장 실질적인 논거이기도 하다. 수사 차원을 넘어,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가 표준이 되는 세계에서 공공 버전을 보유하는 것은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율성의 문제다. 물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점도 있다. 가계를 인플레이션에서 보호하는 바로 그 인프라가 동시에 국가가 합법적으로 설정할 권리가 있는 규칙을 우회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참이다.
거시 그림: 무엇을 봐야 하는가
BIS 연구는 하나의 전환점을 표시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열성 마니아들의 도구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통화 정책의 변수가 됐다. 금융시장 규제 당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율과 자본 흐름을 관장하는 기관들이 직접 다뤄야 할 의제다.
앞으로 수년 안에 답해야 할 질문은 이 민간 디지털 화폐를 허용해야 하는지 여부가 아니다. 현실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어디에나 있다. 진짜 질문은 스테이블코인을 끄지 않고도 통제할 방법이 아직 존재하는지다. FSC와 금융감독원이 스테이블코인 송금 및 결제 규율 방안을 구체화하는 시점. 그리고 DAXA가 회원사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조정하는지가 국내 투자자들이 주시해야 할 다음 신호다. BIS의 원본 연구와 관련 자료는 국제결제은행 공식 사이트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확인할 수 있다.

